EU가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는 전통적인 수출입 규제 체계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무역 환경 규범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글로벌 무역질서에 구조적 영향을 주는 ‘비관세장벽’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CBAM은 본격적인 과세 시행(2026년)을 앞두고 있으며, 수출기업과 무역당국, 인증기관 모두에게 새로운 대응 체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CBAM 도입 전후의 글로벌 수출입 기준 변화를 중심으로, 보고·인증 요건, 대상 품목 확대, 제3국 수출 대응 전략 등을 분석합니다.
1. CBAM 도입 전: 탄소정보 비의무화와 자율규제 중심
CBAM이 도입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국가와 지역에서 탄소배출량은 기업의 자율적 공개 또는 일부 환경규제 이행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수출입 통관에서 탄소배출 정보는 필수 요소가 아니었으며,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습니다.
- 무역 규범 비포함: WTO, FTA 등 기존 무역규범에서 탄소배출은 관세·비관세 장벽으로 분류되지 않음
- 자율 공시 중심: 탄소정보 공개는 기업의 ESG 대응 수준으로 간주
- 제품 단위의 탄소배출 산정체계 미비: 공급망 기반 탄소계산(LCA)은 특정 산업만 활용
- 국가 간 기준 불일치: EU, 미국, 한국, 일본 등 모두 탄소 산정·보고 방식 상이
이러한 점은 탈탄소 사회로의 이행에서 수출기업의 실질적 부담을 낮춰주는 요인이 되었지만, 동시에 국제 간 탄소누출(Carbon Leakage) 우려를 키우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2. CBAM 도입 이후: 보고의무와 제품별 배출정보 요구 강화
CBAM이 2023년 10월부터 이행 단계(pre-implementation)에 들어감에 따라, EU로 수출되는 특정 품목에 대해 다음과 같은 변화가 본격화되었습니다.
① 보고의무 신설
-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수소 등 6개 품목 우선 대상
- EU 수입업체는 수입품의 생산 시 발생한 직접 및 간접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 발생
- 공식 CBAM 보고서는 분기별 제출, 누락 시 벌칙 부과
② 인증 기준의 국제화
- 탄소배출 데이터는 EU 승인 검증기관 또는 ISO 14067, GHG Protocol 등 국제 인증 기준 활용
- 자국 인증만으로는 부족 →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정량 정보 요구
③ 제품 수출 시 탄소정보 사전 제출 확대
- 기업은 수출 전 제품별 명세서 및 배출계산서 준비 필요
- 중간재·부품 단계까지 원료 및 공정별 탄소계수 산출 요구
결과적으로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한 품질·원산지 기준을 넘어서, 탄소배출 정보를 통관요건으로 간주해야 하는 구조적 전환이 시작된 셈입니다.
3. CBAM이 불러온 글로벌 수출입 기준 변화
CBAM의 도입은 EU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무역질서 전반에 다음과 같은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 수출품 설계 단계부터 탄소계산 필요
- 기업은 생산설계, 원료조달, 공정개선 시 탄소계수 최소화 전략 반영
- 기업 간 공급계약 시에도 탄소정보 제공 요구 급증
나. 국가별 탄소인증 인프라 정비
- 한국, 일본, 캐나다 등은 CBAM 대응을 위한 제품 탄소인증 시스템 구축에 나섬
- 정부 차원의 LCA DB 구축 및 인증기관 국제승인 노력 본격화
다. 탄소정보와 통관의 결합
- EU는 2026년부터 본격 과세 시행 → 탄소배출량 x 탄소가격 = CBAM 납부액
- 일본, 영국, 미국 등도 유사 제도 검토 중 → 글로벌 확산 가능성 높음
라. 무역 협정 내 탄소기준 반영 확대
- 신규 FTA 또는 공급망 협정에서 탄소투명성 조항 포함 검토
- 예: EU-호주 FTA 초안에 CBAM 예외 조항 포함
결론: 수출입 기준, 탄소정보가 새로운 통관요건으로
CBAM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탄소배출을 상품 속성의 일부로 간주하는 무역질서 재편의 시작점입니다. 수출기업은 기존의 원산지·기술규제 외에도, 제품단위 탄소정보를 준비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인증체계를 확보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은 제품별 LCA(전과정평가) 기반 데이터 구축, 국제 인증 취득, 업스트림 공급망 탄소정보 연계 체계를 조속히 확보해야 하며, 정부 차원의 DB 지원과 EU와의 상호인정 협정 추진도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향후 CBAM이 본격화되고 유사 제도가 글로벌 확산됨에 따라, 탄소정보는 수출입 통관의 ‘제4의 요건’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