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의 공공조달 시장은 연간 약 6,000억 달러 규모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조달시장입니다. 이 시장의 참여 조건 중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Buy American 조항입니다. 해당 조항은 연방 정부가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미국산 제품과 자국 내 생산을 우선하도록 의무화한 법률 및 행정명령의 총칭입니다.
특히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는 행정명령 14005호를 발표하며 Buy American 조항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이 명령에 따라 미국산 부품 비율은 기존 55%에서 65%로 상향되었고, 2029년까지 75%로 점진적 인상을 예고했습니다. 아울러 백악관 산하에 Made in America Office가 신설되어 예외 승인 절차가 중앙 집중화되고, 외국산 예외 승인의 문턱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Buy American 규정은 미국 산업 보호를 위한 내부 정책이자, 동시에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제도화된 무역장벽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조달시장 진출을 위한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특히 한국을 비롯한 FTA 체결국 기업들도 조달 참여에서 불이익을 겪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Buy American 구조와 적용 메커니즘
Buy American 관련 조항은 크게 두 가지 법적 프레임으로 작동합니다. 첫째는 Buy American Act (BAA, 1933)이고, 둘째는 무역협정법(TAA)입니다.
- BAA: 연방정부 조달 대상 물품은 미국산이어야 하며, 최종조립이 미국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사용되는 부품의 65~75%가 미국산이어야 합니다.
- TAA: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의 제품은 조달 자격이 있으나, 이는 BAA가 적용되지 않는 계약에 한정됩니다.
즉, 동일한 FTA 체결국이라도 해당 조달 건이 BAA를 우선 적용하면, TAA 기준을 충족해도 배제될 수 있습니다. 이는 FTA상 비차별 원칙의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로 지적됩니다.
통상법적 쟁점: WTO·FTA와의 충돌
Buy American 조항은 다음과 같은 국제통상법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 WTO GPA(정부조달협정): 미국은 회원국이며, 비차별 원칙과 내국민대우 원칙이 적용됩니다. 그러나 미국은 국가안보, 중소기업 보호 등을 이유로 폭넓은 예외 조항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 한미 FTA 제9장: 연방 조달시장 내 한국산 제품에 대해 미국산과 동일한 대우를 보장하나, BAA 적용 조달 건에서는 실질적 차별 발생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조세조치가 아닌 조달기준이라는 형식을 통해 외국산을 배제하는 구조는, 명시적 차별이 아닌 ‘간접 차별’ 형태의 규범 회피로 해석될 수 있으며, WTO 및 FTA 상 분쟁의 소지가 존재합니다.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
Buy American 조항은 조달시장 진입을 노리는 한국 기업에게 다음과 같은 리스크를 초래합니다:
- 현지 조립 또는 생산시설이 없으면 조달 참여 제한
- 미국산 부품 비율 기준 미달로 인해 원산지 판정 탈락
- 제품 일부에 중국산, 베트남산 부품이 포함되어 BAA 기준 미충족
실제 사례로, 한국산 철강제품과 의료기기가 미국 조달청(GSA) 입찰에서 BAA 적용 계약에 의해 탈락한 바 있으며, 조달 요건을 오해한 중소기업이 계약 후 원산지 기준 미준수로 페널티를 받은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실무 대응 전략과 정부의 역할
Buy American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 기업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고려해야 합니다:
- 현지화 전략 강화: 미국 내 최종조립 시설 확보 또는 합작사 설립
- 조달계약별 BAA/TAA 적용 여부 사전 확인: 입찰 전 인증 자료(BOM, 제조공정도, 원산지증명서) 준비
- 간접 진입 전략: 미국 현지 업체와의 파트너십 또는 유통망 활용
- 전담 조직 운영: 조달 계약 대응을 위한 원산지 관리 및 인증 대응 조직 필요
한편 정부 차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지원이 요구됩니다:
- 중소기업 대상 Buy American 대응 컨설팅 및 인증 지원
- 한미 FTA 위반 가능성에 대한 양자 통상협의체 활용
- WTO GPA 내 미국 예외 남용에 대한 다자 공동 대응 모색
결론: Buy American은 통상과 산업의 경계선에 있다
Buy American 조항은 단순한 조달 기준이 아니라, 미국의 산업정책, 고용 전략, 통상전략이 집약된 구조적 정책 도구입니다. FTA 체결국이라 해도 BAA가 적용되는 조달 시장에서는 실질적 차별을 받을 수 있으며, 이는 WTO 및 FTA 체제의 신뢰도와 일관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한국 기업은 통상규범 이해를 기반으로 실무 대응 전략을 고도화하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외교적 대응과 제도적 지원을 병행해야 합니다. Buy American은 무역장벽인 동시에 미국시장 진출 전략의 핵심 변수이므로, 정밀한 규범 해석과 공급망 전략, 현지화 설계가 동시에 요구되는 신통상 환경의 상징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