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탄소중립은 더 이상 선택적 환경정책이 아닌, 국제질서와 통상규범을 재편하는 핵심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Net Zero)를 둘러싼 주요국의 이행 방식, 속도, 제도 구조가 급속히 분화되면서, 기존의 협력적 기후질서에서 갈등적 통상구조로 이행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EU, 중국, 개도국 등 주요 블록은 각기 다른 탄소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탈탄소’를 둘러싼 새로운 규범경쟁, 무역장벽, 공급망 전환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국제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2025년 관점에서 분석하고, 향후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1. 주요국 탄소정책 분화: 협력에서 경쟁으로
기후변화 대응은 2015년 파리협정을 기점으로 전 세계가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는 협력적 구조를 띠었으나, 최근에는 ‘국가별 전략’이 우선시되며 탄소정책이 사실상 분화되고 있습니다.
① 미국: 산업 중심의 탄소정책 재정비
-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탄소중립 목표는 유지하되 IRA 적용 조건 강화
- 국산 제조 보호, 에너지 안보 강조로 기후외교 후퇴
- 탄소정보 공시(SEC 규정) 일부 유예, 공급망 중심 재편 가속
② EU: 규범 확산 중심의 기후주도 전략 지속
-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2026년 전면 시행 예정
- 배출권거래제(EU ETS), ESG 공시 의무 강화 지속
- 기후 클럽(G7 중심) 통해 다자 규범화 시도
③ 중국: 단계적 ETS 확대와 국제 압력 회피 전략
- 발전 부문 ETS 운영 중, 2025년 이후 전 산업 확대 계획
- 국내 산업 보호와 외교적 기후참여 병행
④ 개도국: 기술·재정 격차로 탄소정책 정체
- 기후기금(GCF) 약속 미이행 지속 → 대응역량 제한
- 탄소정보 산정 및 인증 역량 부족 → 수출 애로 요인 확대
이처럼 각국은 자국 이해에 맞는 방식으로 탄소정책을 설계하고 있으며, 이는 기후협약 중심의 국제합의보다는 통상정책과 산업전략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2. 탄소 중심 통상 규범의 부상과 충돌
탄소정보와 배출량은 이제 수출입, 조달, 보조금 수혜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며, 이는 전통적인 무역규범(WTO)과의 충돌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① 탄소국경세(CBAM)와 무역분쟁
- EU의 CBAM은 철강·알루미늄 등 고탄소 제품 수입 시 배출량 기반 세금 부과
- 미국, 중국, 인도 등은 WTO 차원의 비차별성 원칙 위반 가능성 제기
② 보조금 규범과의 충돌
- 미국 IRA: 청정에너지 인센티브가 특정국 차별로 해석될 가능성 존재
- EU: 탄소중립 보조금 체계 확산 → 산업정책 vs 기후정책 혼용 우려
③ 탄소정보 공개 및 인증의 지역별 차이
- EU: 제품별 배출량 산정(LCA 기준), EPD 요구 강화
- 미국: Scope 1·2 중심 공시로, Scope 3는 자율화 가능성
- 개도국: 공시 역량 부족, 국제 인증 연계 미비
결국 탄소규범은 무역의 새로운 비관세장벽이 되고 있으며, 각국의 상이한 탄소기준은 기업에게 '이중 규범 부담'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3. 국제 기후협력체계의 약화와 민간 주도 확산
기후변화 대응의 중심이었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제도적 한계와 정치적 이견으로 실효성이 약화되고 있으며, 민간 주도의 자율적 기준이 시장에서 점차 표준화되고 있습니다.
① COP 회의의 협상 기능 약화
- COP28 이후 개도국 지원방식, 감축 책임 분담 논의 교착
- 탄소시장(Article 6) 운영 메커니즘 구체화 지연
② G7·OECD 중심의 기후 클럽 부상
- 회원국 간 탄소정보 상호인정 추진 → 글로벌 연합 형태
- 비회원국 제품에 비관세 규제 부과 가능성 논의
③ 민간 주도 기준의 확산
- SBTi(과학기반 감축목표), CDP(탄소정보공개) 등 민간 주도 이니셔티브 확대
- 글로벌 투자기관은 국가정책보다 민간 ESG 기준 중시
기후규범의 중심축이 ‘정부 간 협상’에서 ‘시장 기반의 자율 표준’으로 이동하고 있는 점은 향후 통상 질서에 심대한 변화를 예고합니다.
결론: 탄소중립은 국제질서의 새로운 기준
2025년 현재 탄소중립은 환경정책의 영역을 넘어, 국가의 산업정책, 무역전략, 외교정책, 기업의 ESG 기준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탄소정책이 분화됨에 따라 협력보다는 경쟁, 통상규범보다는 산업보조금 중심의 보호주의로 기울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을 포함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다중 규범에 대한 통합적 대응력이 필요하며, 국제 협상과 시장 대응을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탄소정보가 곧 무역 허가증이 되는 시대, 국제질서의 중심은 ‘배출량’과 ‘정보투명성’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