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모두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전환을 위한 친환경 무역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지역의 접근 방식에는 산업보조금 중심의 미국과 규범·세금 기반의 유럽이라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정책 수단의 차이를 넘어, 통상정책의 철학, 규범 해석 방식, 무역 파트너 국가와의 관계 설정 등 다층적 구조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미국은 '산업 생태계 확보'를, 유럽은 '기후 리더십과 글로벌 규범 전파'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방향성이 다릅니다.
1. 미국: IRA 중심의 보조금 기반 산업유인 전략
미국은 2022년 제정된 IRA(Inflation Reduction Act)를 통해 친환경 산업에 대한 세금 감면과 생산 보조금을 본격화했습니다. IRA는 청정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국내 투자, 일자리, 공급망 회복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 등 경쟁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한 전략적 산업정책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 전기차 보조금 최대 7,500달러 (북미 조립, 미국산 배터리 기준)
- 태양광·풍력 설비 설치 시 투자세액공제(ITC) 최대 30%
- 그린 수소 생산량 기준 보조금 확대
- 노조 고용 여부, 미국산 원자재 사용 비율에 따른 가산점 존재
IRA는 단순 보조금 법안이 아닌, 에너지·노동·공급망 정책이 통합된 복합 통상 플랫폼입니다. 특히 미국은 이 법을 통해 자국 기업에 유리한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글로벌 기업들의 대미 투자 이전을 유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유럽, 한국, 일본 등 우방국 기업들도 앞다투어 미국 현지 생산 기반을 확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동맹국 기업들이 역차별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2. 유럽: CBAM 중심의 탄소 가격 기반 규범 전략
유럽연합은 탄소배출에 대한 경제적 비용 부과와 국제 규범 확산에 중점을 둔 정책 노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정책이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며, 이는 역내 제조업 경쟁력 보호와 글로벌 기후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위한 장치입니다.
- CBAM 대상 품목: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수소
- CBAM 적용 방식: 수입업체가 제품별 탄소배출량 신고 → CBAM 인증서 구매
- 적용 시기: 2023~2025년 정보 수집 및 시범 운영, 2026년부터 본격 부과
CBAM의 도입 배경에는 EU ETS(탄소배출권 거래제)와의 정합성을 유지하며, 탄소누출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특히 유럽은 국제무대에서 기후리더십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CBAM을 활용하고 있으며, 글로벌 환경규범의 표준화 주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도국과 탄소정보 공유가 어려운 국가들은 CBAM이 비관세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으며, 탄소 정량평가 기준의 일관성, 기업별 대응 역량 차이 등 현실적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럽 내부에서도 탄소정보 추적 비용과 행정 부담에 대한 불만이 일부 존재합니다.
3. 정책 비교: 접근방식, 규범, 국제 반응
항목 | 미국 (IRA 중심) | 유럽 (CBAM 중심) |
---|---|---|
정책수단 | 세액공제, 보조금, 국내 생산 조건 | 탄소 가격 부과, 수입품 규제 |
정책목표 | 산업 유치, 고용 창출, 기술 패권 강화 | 탄소누출 방지, 환경규범 전파 |
국제 규범과의 관계 | WTO 내국민대우 원칙 위배 논란 | WTO 환경예외 조항 기반 정당화 가능 |
정치 수용성 | 미국 의회 및 제조업계 지지 기반 탄탄 | EU 환경단체 및 시민사회 지지, 일부 산업계 반발 |
수출국 영향 | 현지 투자 압박, 원산지 조건 불리 | 탄소정보 공개 부담, 생산비용 상승 |
4. 한국의 대응 방향
양측 정책 모두 한국 산업에 구조적 영향을 주고 있으며, 산업별로 대응 방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 IRA 대응: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 미국 내 전기차·배터리 공장 설립 가속화
- CBAM 대응: 철강, 알루미늄 업계 중심으로 탄소배출 측정 시스템 구축 확대
- 정부 차원: 통상협의체 운영(한미, 한EU), 탄소감축 기술 R&D 보조금 연계
또한 민간기업은 자발적 ESG 정보 공개, 국제 인증 확보, 녹색 원자재 확보 등을 통해 글로벌 친환경 규범에 선제적으로 적응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인센티브와 저탄소 전환 정책 연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결론: 산업보조금 vs 환경규범, 통상정책 철학의 차이
미국과 유럽의 친환경 통상정책은 같은 기후 목표를 향하지만 전혀 다른 전략과 규범을 사용합니다. 미국은 보조금과 내수 기반 생산 유치 전략을, 유럽은 탄소 가격을 통한 규범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이며, 향후 글로벌 통상질서는 이 두 방향성의 균형 속에서 재편될 것입니다.
한국은 IRA와 CBAM 모두에 영향을 받는 대표적 교역국으로서, 다자통상규범 수호, ESG 수출전략 고도화, 기술 중심의 녹색 전환 가속을 통해 새로운 질서 속에서 기회를 확보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