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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 예외조항의 국제법 해석 (WTO, 미국)

by 다코부부 2025. 7. 28.

national security 관련 사진

국가 간 무역 분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조항 중 하나가 WTO GATT 제21조, 즉 ‘국가안보 예외조항’입니다. 이는 회원국이 자국의 필수 안보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무역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항이지만, 그 해석 범위와 자의성 여부를 두고 국제적으로 큰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2018년 이후 자국 중심 통상정책을 강화하면서 이 조항을 광범위하게 적용해왔고, 이에 대한 WTO 패널의 판단과 국제법적 해석 기준은 향후 세계무역질서의 방향성을 좌우할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GATT 21조의 핵심 내용과 해석의 쟁점,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국제법상 국가안보 예외가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는지를 분석합니다.

GATT 제21조 국가안보 예외조항의 구조

WTO의 전신인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제21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Nothing in this Agreement shall be construed... to prevent any contracting party from taking any action which it considers necessary for the protection of its essential security interests.”

즉, 이 조항은 국가가 자국의 안보 이익(essential security interests)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자신이 판단’하는 조치를 허용하며, 그 적용 예시로는 다음을 포함합니다:

  • 전시 또는 전쟁 상태
  • 국제적 긴급상황 발생 시
  • 군수물자 또는 군사 관련 거래 제한 등

핵심 문제는 ‘회원국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any action which it considers necessary)’ 조치에 대해 WTO가 얼마나 심사할 수 있는가입니다. 다시 말해, 이 조항은 국가 스스로 판단하는 ‘주관적 요건’인지, 아니면 국제 기준에 따라 판단 가능한 ‘객관적 요건’인지에 대한 해석 논쟁이 존재합니다.

WTO 패널 판정과 미국의 이견: 러시아 vs 우크라이나 사건

국가안보 예외조항에 대해 본격적인 해석 논쟁이 시작된 대표적 사례는 2019년 “러시아 vs 우크라이나 (DS512)” 사건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를 국가안보 예외로 주장했고, 이에 대해 WTO 패널은 처음으로 제21조에 대한 해석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습니다.

WTO 패널 판정 요지:

  • 국가안보는 중요한 사안이나, 무제한적으로 자의적인 조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 ‘국제적 긴급상황’ 등 제21조에 명시된 조건을 객관적으로 충족해야 한다
  • WTO는 최소한의 심사권한(judicial review power)을 가진다

이는 국가가 안보 예외를 주장하더라도, 최소한의 ‘객관적 정황’을 입증해야 하며, WTO가 그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미국의 반응: 미국은 이 판정을 강력히 반발하며, “국가안보는 자국 정부의 독점적 판단에 따라야 하며, WTO가 이를 심사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미국은 항소 절차를 지연시키고, 항소기구 위원 선임을 거부하며, WTO 항소기구 자체를 마비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현재 국가안보 예외와 관련된 분쟁은 기술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일방적 무역조치’가 확산되고 있는 배경이 됩니다.

최근 미국의 국가안보 주장 사례와 국제법적 논란

미국은 트럼프 1기에 이어 2025년 트럼프 2기 출범 후에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 철강·알루미늄 관세 (Section 232): 주요국 철강제품에 25% 추가 관세 부과
  • AI 반도체 수출 제한: 중국에 대한 GPU, AI 클라우드 서비스 등 기술 수출 규제
  • IRA 세제 혜택 배제: 특정 외국산 배터리·소재에 대한 보조금 배제 정책

이들 조치는 WTO 협정의 최혜국 대우, 내국민 대우, 보조금 규정 등에 위배될 수 있으나, 미국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제약을 가한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Section 232 조치를 둘러싼 DS548 (EU vs 미국), DS544 (중국 vs 미국) 사건에서도, WTO는 미국이 제21조를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국제법적 해석 쟁점:

  1. 국가안보 예외는 무역규범을 초월하는가?
  2. 객관적 판단 기준 없이, 모든 조치에 대해 국가가 일방적으로 ‘안보’ 명분을 주장할 수 있는가?
  3. WTO의 사법적 심사권한은 어느 범위까지 미치는가?

현재 국제사회는 이러한 쟁점에 대해 분열된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과 러시아는 완전한 자의적 해석을 주장하는 반면, EU·일본·한국 등은 제한적이지만 ‘국제사법적 심사권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WTO 제21조 국가안보 예외는 국제통상법 체제 내에서도 가장 해석이 민감한 조항이며, 현재 미국의 통상정책에서 중요한 무기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자의적으로 남용될 경우, 무역규범의 보편성 자체가 무너지며, 다자무역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는 ‘국가안보 예외’가 등장하는 무역조치에 대해, 법적 리스크와 대응 전략을 사전에 검토하고, 양자·다자 통상채널을 병행 활용한 협상력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